안녕하세요 Jarvis입니다. 오늘은 지난 7개월 간 몸담았던 코드앤블록을 퇴사하면서(실제 퇴사는 한 2개월 정도 더 걸릴 것 같아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작성해 보려고 합니다(본 포스팅은 현 회사의 동의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왜 코드앤블록에 입사하게 되었나요?
이전 직장인 큐피스트를 2022년 10월에 퇴사하고 약 4개월 간의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한 달 정도는 유럽여행도 다녀오고(유럽을 이 때 처음 갔습니다)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백기 동안 제가 인맥이 그렇게 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꽤 많은 대표님들과 회사를 만나뵈었던 것 같습니다.
만나본 모든 대표님들이 각자 개성이 넘치셨고 미팅 역시 재미있는 시간이었는데, 2023년 2월 말 정도에는 만나본 회사들 중 크게 두 곳으로 압축했습니다. 특히 한 곳은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고, 또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 점이 좋았어서 만약 제가 코드앤블록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해외에서 거주하며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이 친구는 제 25년 지기이자 프리랜서 웹 제작자로 시작해서 웹 에이전시를 창업한 친구입니다. 당시 에이전시를 exit하고 신규 사업을 한 1년 정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로 대략 이런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흔 전에 한 번은 사업 같이 해보기로 했잖아. 지금인 것 같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이 친구 scale-up에 대한 갈망이 꽤 컸습니다. 그런데 본인의 Base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 있다 보니 회사의 scale-up과 관련한 역량이 부족했고 저한테 SOS를 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합류하기에 코드앤블록과의 Fit이 100%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놈의 약속이 뭔지 뱉은 말은 지켜야겠기에 일단 1년만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를 하고 코드앤블록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PMF(Product Market Fit)를 찾기 위한 과정. “그래서 우리의 고객이 누군데?”
2023년 3월에 코드앤블록에 합류했을 때 이미 Product는 MVP(?)의 개발이 거의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웹페이지 제작을 오래 하다 보니,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서비스 제작에 필요한 각 분야(기획, 디자인, 개발 등)를 혼자서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참 특이한 친구입니다. 서비스는 Headless CMS에 Database 연동 기능과 일부 프론트엔드의 코드 자동 생성 기능이 결합된 서비스인데, 쉽게 말하면 ‘배너나 팝업, 상품 정보들을 관리하는 어드민의 자동 생성 + 이 어드민의 정보가 저장되는 Database도 자동 생성 + 특정 웹페이지의 배너 영역(과 같은 부분)에 사용된 코드를 복사해서 우리 웹페이지에 해당 부분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기능’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요 기능만 설명 드리면 이렇고, 이 외에도 몇 가지 기능들이 더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조금 어려우실까요?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프로덕트를 보니, 이걸 누가 이해하면서 사용할까 싶더라고요. 더 나아가서 국내 기준 약 400만 개 웹사이트가 존재하는데 대부분 Cafe24와 같은 솔루션을 사용하거나 웹 에이전시에 사이트 제작을 의뢰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고객에게 이 프로덕트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판매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프로덕트의 범위를 아래와 같이 줄이기로 정했습니다.
- 고객 : Cafe24 솔루션을 사용하는 연 매출 5억 미만의 쇼핑몰
- 어찌어찌 안 사실인데 고객 비율이 97% 이상 될 것으로 판단
- 서비스 소개 : 배너 관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솔루션
이렇게 정하고 PMF Narrative Framework를 사용하여 PMF를 사전 검증해보기로 했습니다(프레임워크 소개에 도움 주신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의 이경진 CPO님께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나중에 별도로 PMF Narrative에 대해 포스팅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지만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프레임워크 소개
실제 사례
고객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저희는 코드앤블록의 서비스가 고객에게 가치 전달이 되지 않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아래와 같은데요
- 고객은 생각보다 홈페이지 레이아웃을 잘 교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너 영역 역시 한 번 정하면 잘 바꾸지 않죠. 애초에 마음에 드는 레이아웃을 만들기 위해 스킨 탐색에 시간을 많이 보내니까요. 사실 스타트업에서도 만드는 웹페이지도 자주 바꾸지 않는데, 쇼핑몰은 더 안 바꿀 것이라는 생각을 잘 못했습니다.
- 배너 관리에 대한 부분 역시 코드 수정을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코드 한 줄 정도만 가볍게 바꾸어 주면 되는 부분이라서요.
- 사실 Headless CMS의 강점은 프론트엔드가 다양하고 가변적일 때 나타나는데, 쇼핑몰의 경우는 그래봐야 웹(모바일 웹) 정도입니다. 앱으로 출시한다고 하더라도 하이브리드형태로 출시하기 때문에 사실상 프론트엔드는 하나라고 봐야 하겠죠.
- 경쟁 업체에서 유사한 기능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하게는 Cafe24 스킨을 판매하는 스킨 제작 에이전시 중 일부가 자체적으로 만든 배너 관리 기능을 무료로 탑재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고객을 Cafe24 스킨업체로 바꿔보거나, 해외로 눈을 돌려 워드프레스 적용방법을 고민해봤지만 사업성이 없어 이 역시 기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드앤블록은 표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돌고 돌아 다시 Web Agency로의 회귀
이 때부터 코드앤블록은 회사명을 바꿀 각오를 하고 신규 사업 아이템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한 4~5월 경으로 기억하는데요, 당시 ChatGPT 열풍이 불고 있던 터라 AI기술 분야를 먼저 검토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상용화된 리걸테크 분야를 선정하고 사업성 검토를 실시했습니다. 특히 판례 분석에 기초한 의견서 작성(특히 민사에서 기일 전 원고 피고 간 핑퐁하는)에 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토했었고 결론적으로 이 사업 역시 우리의 역량으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유로는 1) 해외처럼 우리나라의 판례가 잘 공개되어 있지 않고(대법원 판례 일부에 한해 공개되어 있거나, 법무법인이 수임한 사건별로 파편화되어 있음) 2) 그마저도 머신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저장되지 않은 점 3) 기존 Player의 반발(변호사협회 등)이 거셀 수 있다는 등의 이유입니다.
약 한 달 동안 둘이서(멤버가 저희 둘 뿐입니다) 신규 사업 아이템 3개 정도를 추가로 검토하고 나서, 어느 날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성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 빼고, 왜 코드앤블록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고 친구는 자신이 웹 에이전시를 하면서 매번 똑같은 CMS를 반복해서 만드는 것이 너무 싫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웹 에이전시에서 프로젝트를 수주 받아 페이지를 만들다 보면 매번 비슷한 작업을 하게 되는데, 버려지는 코드(한 번 작업해서 넘기면 끝)를 보는 것이 안타깝고 이걸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 보니 코드앤블록을 창업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너는 일하면서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물으니, 고객 이야기를 듣고 웹페이지를 짠! 하고 제대로 만들었을 때 가장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웹 에이전시가 싫은 게 아니었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코드앤블록도 에이전시에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해서 창업했다고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 코드앤블록에서 만든 서비스를 자체적으로 활용해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2) 웹 에이전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적용하는 웹 에이전시를 만드는 것을 제안(개인적으로는 신규 사업쪽을 희망했지만 1년 간은 이 친구를 최선을 다해 돕기로 하고 온 것도 있고, 대표의 Sweet Spot이 여기에 좀 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했고 친구도 흔쾌히 수락해서 사업의 방향성을 다시 Web Agency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두 달 반의 파견 근무와 M&A의 시도
사업 방향성을 다시 Web Agency로 돌리니 다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 코드앤블록이 만든 서비스를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조직 규모가 8명 이상이어야 한다.
- 그런데 처음부터 시작하는 Web Agency의 생존 확률이 높지 않다(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이지만).
- 처음부터 시작하는 Web Agency의 재무 구조 상, Jarvis보다는 실무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
- 코드앤블록이 만든 서비스를 에이전시용으로 만들려면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
- Jarvis가 에이전시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 Jarvis의 역량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명 내외의 조직 규모를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적고 나니 하루 빨리 제가 퇴사하거나, 코드앤블록이 하룻밤 새 최소 10명의 인건비를 감당하는 웹 에이전시로 변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후자는 말이 안 되니, 사실상 제가 퇴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가 제안을 하나 합니다.
다른 웹 에이전시랑 합병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더 빨리 규모를 갖춘 에이전시에서 우리 서비스를 적용해볼 수 있잖아?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친구도 에이전시에서는 일당백을 하는 친구였고 저도 Business Operation 측면에서 강점이 있었으니까 이 두 역량 + 코드앤블록의 서비스를 원하는 다른 웹 에이전시가 있다면 충분히 딜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원하는 웹 에이전시가 아주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와 함께 하는 대표가 엑싯하고 나온 웹 에이전시입니다(편의상 A 에이전시로 부르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마자 친구는 바로 거절합니다. 친구가 생각하기에는 A 에이전시에 HR적인 큰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제안합니다.
- 내가 A 에이전시에서 두 달 반 정도 파견 근무를 하겠다.
- A 에이전시도 나와 같이 해결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 것으로 안다.
-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 나는 에이전시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올릴 수 있다.
- 파견 근무를 하면서 A 에이전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파악하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지 판단하겠다.
- 파견 근무 동안, 내 인건비를 벌 수 있다.
- 그 시간 동안 너는 코드앤블록의 서비스를 에이전시용으로 개량할 수 있다.
이 제안에 친구도 OK를 하여 이러한 제안을 A 에이전시에 타진하게 되고, 양 사가 동의하여 저는 6월부터 약 두 달 반의 파견 근무에 들어가게 됩니다. 파견 근무 동안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의 웹페이지 제작 미팅에 참여해서 리드해보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해 Fire chat을 하는 하청사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기도 했습니다(큰 회사의 내부 책임 전가와 같은 정치질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무엇보다도 스타트업 업계에서 아주 익숙하고 당연하게 사용했던 개념이나 시스템, 솔루션과 프로세스를 에이전시에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많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UI(또는 GUI)가 구려도 UX가 훌륭한 서비스들의 위대함들을 알았다고나 할까요(배달 기사님들이 들고 다니시는 휴대폰이나 태블릿에 깔린, 저는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앱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비록 스타트업 업계에서 오랫동안 종사해왔지만 세상에는 많은 업종의 회사들이 있고, 각자 회사에서의 특별한 UX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크게 느끼고 HR적으로 한 계단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창업가 분들을 응원합니다
두 달 정도 지나고 친구가 우려했던 A 에이전시의 문제점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판단하여 양사에 설명하고 본격적으로 M&A 절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 해보는 업무라 실수가 많았는데요, 약 한 달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최종 조건을 조율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론적으로는 M&A에 실패하고 제 친구는 기존대로 본인이 Web Agency를 꾸려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조건들을 볼 때 제가 회사에 존재하는 것이 회사 측면에서 좋지 않기 때문에 합의 하에 퇴사를 하게 되었고요, 일정 기간은 회사의 인력 채용과 일하는 Process 수립 측면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예정입니다(구직은 지금부터 시작).
M&A 과정에서도 배운 것이 많았지만, 마지막으로는 제 친구를 포함하여 창업가 분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코드앤블록의 처음 사업 방향성에서 지금의 사업 방향을 잡는 약 두 달 간의 Pivoting 과정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제가 창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거의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지금은 괜찮아요). 예전에 브랜디에서도 커머스로 피봇팅하는 약 두 달 정도의 기간이 있었는데, 그 땐 제가 어려서 잘 몰랐지만 대표님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고,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창업가 분들께서 이렇게 힘들게 고민하시는 그 가운데 우리의 사회가 좀 더 발전하고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스타트업 업계에 몸담았던 2015년만 해도 없었던 서비스들로 인해 지금 우리의 삶이 직접적으로 많이 변했다고 느끼니까요. 그러니까 많이 힘드시겠지만 내가 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충분히 가지시고 앞으로 전진하시기를 응원합니다.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합니다.
음..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야겠다 정한 것은 아직 없고, 아마도 분야는 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여태껏 일한 경력을 살펴보면 분야는 정말 다양했고 각자의 배움이 있었으니까요.
저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정하지 않은 만큼 편한 커피챗 역시 언제나 환영입니다. wongukyun@gmail.com으로 메일 주시면 빠르게 답변 드리겠습니다.
https://www.linkedin.com/in/wonguk-yun-591952161/
이 포스팅을 보시는 분들께 관심 있어하실 만한 주변 지인들에게 홍보를 살짝 부탁 드려봅니다.
감사합니다. 더 많이 배우겠습니다.